더위가 물러나는 자리, 처서(處暑)
더위가 물러나 머무는 자리. 신월의 중기이며, 풀이 자라기를 멈추고 여름의 기세가 실제로 꺾이는 시기다. 끝나는 일은 대개 조용히 끝난다는 이야기.
한눈에
- 언제 · 양력 8월 22~23일 무렵.
- 처서란 · 곳 처(處), 더울 서(暑). 더위가 물러나 머무는 자리.
- 중기의 자리 · 신월(申月)의 한복판. 월지는 바뀌지 않는다.
- 풀이 멈춘다 · 여름 내내 자라던 풀이 이 무렵 성장을 그친다. 벌초를 이때 하는 이유다.
-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 · 더위가 꺾이는 것을 두고 옛사람이 남긴 표현.
- 읽는 법 · 끝은 선언 없이 온다.
처서(處暑)의 처(處)는 머문다, 자리 잡는다는 뜻이다. 더위가 물러나 제자리에 멈춰 선다는 말이다.
입추에서 방향이 바뀌었다면, 처서는 그 바뀜이 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자리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고 밤에 창문을 닫게 된다. 낮은 여전히 덥지만 성질이 다르다. 여름의 더위가 눌러앉는 더위였다면 이제는 지나가는 더위다.
풀이 자라기를 멈춘다
처서에 관해 가장 자주 인용되는 사실이 있다. 이 무렵 풀이 자라기를 멈춘다는 것이다.
여름 내내 풀은 베어도 베어도 다시 자랐다. 며칠만 두면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런데 처서를 지나면 다르다. 한 번 베면 그대로 있다. 그래서 벌초를 이 시기에 한다. 여름에 하면 헛일이 되고, 처서를 넘겨 하면 한 번으로 끝난다.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말도 이 무렵을 두고 나왔다. 기온이 내려가면서 모기의 활동이 급격히 줄어든다.
두 이야기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여름의 기세가 실제로 꺾였다. 방향이 아니라 힘이 꺾인 것이다.
조용히 끝난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이 끝남의 방식이다.
여름은 선언하고 끝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서늘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며칠 사이에 풀이 안 자라고 모기가 줄고 밤에 이불을 덮게 된다. 지나고 나서야 아, 여름이 갔구나 하고 안다.
우수 편에서 풀리는 일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했다. 끝나는 일도 같다. 소리를 내는 것은 시작하는 일뿐이다. 끝은 대개 조용하다.
사람의 일도 그렇다. 무언가가 끝났다는 것을 우리는 대체로 뒤늦게 안다.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맞이하는 마지막은 드물다. 어떤 관계도, 어떤 시기도, 어떤 습관도 대개 마지막인 줄 모르고 지나간 뒤에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된다.
확인하는 시간
그래서 처서 무렵에는 확인하는 일이 어울린다.
농사로 보면 이 시기는 결과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때다. 여름 내내 자란 것이 이제 어떻게 됐는지 눈에 보인다. 잘된 것과 안 된 것이 갈리고, 그것을 뒤집을 방법은 이미 별로 없다. 남은 것은 남은 조건에서 최대한 거두는 일이다.
이것이 실망스럽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 계절의 장점이기도 하다. 여름에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자라는 중이라 판단할 수 없었고, 판단해도 틀리기 쉬웠다.
이제는 안다. 안다는 것은 다음을 계획할 근거가 생겼다는 뜻이다. 올해 이 방식이 어땠는지 알면 내년에 무엇을 바꿀지 정할 수 있다.
매듭이라는 것
처서를 한 단어로 하면 매듭이다.
무언가가 끝나는 자리에 매듭을 하나 지어 두는 일에는 실용적인 쓸모가 있다. 매듭이 없으면 끝난 것과 계속되는 것이 섞인다. 이미 끝난 일에 계속 힘을 쓰거나, 반대로 아직 남은 일을 끝난 것으로 치고 놓아 버린다.
계절이 매듭을 대신 지어 주는 것은 그래서 편리하다. 처서가 지나면 여름은 끝난 것으로 친다. 아직 더워도 그렇게 친다. 그렇게 정해 두면 여름에 하려던 일은 접고 가을에 할 일로 넘어갈 수 있다.
끝나는 일은 대개 조용히 끝난다. 선언 없이 그냥 더 이상 안 일어난다.
시작은 소리를 내고 끝은 조용하다. 그래서 매듭은 지어 두는 편이 낫다. 내 사주의 계절은 어디쯤일까 → 첫 분석 보기 다음 편 · 백로 — 흰 이슬이 맺히는 자리 → 이어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