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절기, 그리고 다시 입춘 — 대한(大寒)
24절기의 마지막 자리. 축월의 중기이며, 이 다음이 다시 입춘이다. 스물넷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처음 자리로 돌아오는, 시리즈를 닫는 편.
한눈에
- 언제 · 양력 1월 20~21일 무렵.
- 대한이란 · 큰 추위(大寒). 24절기의 마지막 눈금.
- 중기의 자리 · 축월(丑月)의 한복판. 다음 절인 입춘이 들면 다시 인월(寅月)이다.
- 끝이자 문 앞 · 마지막 절기 바로 다음이 한 해의 첫 절기다.
- 원이다 · 스물넷은 일렬로 늘어선 줄이 아니라 닫힌 원이다.
- 읽는 법 · 끝나는 자리와 시작하는 자리가 붙어 있다.
대한(大寒)은 큰 추위다. 그리고 24절기의 마지막 눈금이다.
입춘에서 시작해 스물세 개를 지나 여기까지 왔다. 이 다음은 다시 입춘이다.
끝과 시작이 붙어 있다
절기에는 끝이 없다. 대한이 마지막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세는 순서에서 마지막일 뿐 실제로는 다음 것이 바로 이어진다.
스물넷은 줄이 아니라 원이다.
이 배치는 시리즈 내내 반복된 구조의 가장 큰 형태이기도 하다. 하지에서 정점이 곧 전환점이었고, 동지에서 바닥이 곧 반등점이었다. 대서 다음에 입추가 왔고 소한 다음에 입춘이 온다. 극에 이른 자리 옆에는 늘 다음 것이 대기하고 있었다.
원에서는 어느 점도 진짜 끝이 아니다. 가장 추운 자리조차 봄의 문 앞이다.
이 시리즈가 한 이야기
스물네 편을 지나오면서 몇 가지가 반복됐다.
하나. 절기는 결과가 아니라 방향을 읽는다. 입춘·입하·입추·입동은 넷 다 그 계절이 오기 전에 놓인다. 방향이 먼저 바뀌고 실감이 나중에 따라온다.
둘. 정점과 실감 사이에는 시차가 있다. 하지에 해가 가장 길지만 가장 더운 것은 대서다. 동지에 밤이 가장 길지만 가장 추운 것은 소한 무렵이다. 그래서 지금이 어디인지는 대개 지나야 안다.
셋. 같은 지점도 방향에 따라 다르다. 춘분과 추분은 낮밤 길이가 같지만 하나는 올라가는 중이고 하나는 내려가는 중이다. 한 점만으로는 판정되지 않고, 앞뒤를 놓아야 자리가 정해진다.
넷. 계절은 한 달 단위로 뚝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눈금이 보름마다 놓였다. 흰 이슬과 찬 이슬을 나눠 부르지 않았다면 그 사이의 변화를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사주가 절기를 따르는 이유
명리에서 월지를 바꾸는 것은 절이다. 달력의 월이 아니라 절입이 기준이고, 그 경계는 날이 아니라 시각으로 온다.
이 시리즈가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 그것이다. 사주는 태어난 순간의 계절을 여덟 글자로 옮긴 것이고, 계절을 정하는 것은 사람이 그은 선이 아니라 해가 그은 선이다.
그러니 자기 사주를 정확히 알려면 절입 시각을 알아야 한다. 경계에 가까이 태어난 사람일수록 그렇다. 만세력이라는 물건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다시 입춘
대한이 지나면 입춘이다.
여전히 춥다. 눈도 남아 있고 땅도 얼어 있다.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그런데 그 자리에 봄이 선다는 이름이 붙는다.
1편에서 한 이야기를 마지막에 다시 놓는다. 절기의 셈법은 조건이 갖춰진 뒤를 시작으로 치지 않는다. 방향이 정해지는 순간을 시작으로 친다. 다 갖춰진 뒤에 시작하려 하면 시작할 자리는 오지 않는다.
스물네 개의 눈금을 지나 제자리로 돌아왔다. 돌아온 자리는 처음과 같은 자리지만, 한 바퀴를 돌고 온 자리이기도 하다.
다시 입춘이다. 아직 춥지만, 그 자리를 봄이라 부른다.
스물넷은 줄이 아니라 원이다. 끝나는 자리와 시작하는 자리가 붙어 있다. 내 사주의 한 해는 어디서 갈릴까 → 첫 분석 보기 처음으로 · 입춘 — 한 해가 바뀌는 진짜 자리 → 이어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