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차오르는 때, 소만(小滿)
만물이 조금씩 차오르는 자리. 사월의 중기이자, 곳간은 비었는데 들판은 아직 여물지 않은 시기다. 가득 차기 직전이 가장 견디기 어렵다는 이야기.
한눈에
- 언제 · 양력 5월 20~21일 무렵.
- 소만이란 · 작을 소(小), 찰 만(滿). 만물이 조금씩 차오르는 자리.
- 중기의 자리 · 사월(巳月)의 한복판. 월지는 바뀌지 않는다.
- 풍경 · 초록이 짙어지고 보리가 익어 간다. 형태가 잡히는 시기.
- 보릿고개 · 묵은 곡식은 떨어지고 햇곡식은 아직. 일 년 중 가장 궁하던 때.
- 읽는 법 · 거의 다 온 자리가 가장 견디기 어렵다.
소만(小滿)은 조금 찼다는 뜻이다. 다 찼다가 아니라 조금.
절기 이름 가운데 이렇게 정도를 절반만 말하는 것이 드물다. 대개는 봄이 선다, 이슬이 맺힌다처럼 상태를 단정한다. 그런데 소만은 굳이 '조금'을 붙였다.
형태가 잡히는 시기
이 무렵 들판을 보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초록이 짙어졌고 작물이 제 모양을 갖췄다. 봄에 났던 여린 것들이 이제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보리는 이삭이 섰고 논에는 물이 들어갔다.
그러나 아직 아무것도 여물지 않았다. 형태는 있는데 알맹이가 없다. 보리 이삭을 훑어 보면 껍질만 있고 속은 덜 찼다. 그래서 조금 찼다고 한 것이다.
봄이 없던 것을 만드는 계절이고 여름이 채우는 계절이라면, 소만은 그 채움이 막 시작된 지점이다. 그릇은 다 놓였고 이제 담기는 중이다.
가장 궁했던 시기
그런데 이 시기가 옛사람에게는 일 년 중 가장 배고픈 때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난가을에 거둔 곡식은 겨울과 봄을 나면서 다 떨어졌다. 그런데 새 곡식은 아직 여물지 않았다. 들판은 온통 초록인데 먹을 것이 없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풍경과 살림이 정반대인 시기다. 눈으로 보기에는 일 년 중 가장 풍성한데, 실제 곳간은 가장 비어 있다. 밖에 나가면 초록이 넘치는데 집에 들어오면 먹을 것이 없다.
거의 다 온 자리
이 어긋남에 소만의 이야기가 있다.
가장 힘든 자리는 아무것도 없을 때가 아니다. 겨울에는 없는 것이 당연했다. 없다는 사실 자체가 계절과 맞아떨어지니 그러려니 하고 견딘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것은 거의 다 왔는데 아직 아닌 자리다. 눈앞에 다 보이는데 손이 닿지 않는 상태. 조금만 더 있으면 되는데 그 조금이 안 지나가는 시간.
무언가를 오래 준비해 본 사람은 이 구간을 안다. 시작할 때는 오히려 힘이 있다. 중간에도 그럭저럭 간다. 그런데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 갑자기 남은 거리가 길게 느껴진다. 이미 다 왔다고 생각한 마음이 아직 안 끝난 현실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덜 찬 것의 힘
그렇다고 이 시기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덜 여문 것에는 덜 여문 것만의 성질이 있다. 아직 무겁지 않아 잘 흔들리고, 아직 굳지 않아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다 여문 이삭은 고개를 숙이고 그 자리에 고정된다. 덜 여문 이삭은 아직 서 있다.
무엇이 될지 이미 정해진 것과, 아직 정해지는 중인 것의 차이다. 후자는 불안하지만 그만큼 열려 있다.
소만은 그 열림이 남아 있는 마지막 구간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는 차오르는 일만 남는다. 방향을 손볼 수 있는 시기는 지금이 끝이다.
가장 힘든 자리는 아무것도 없을 때가 아니라, 거의 다 왔는데 아직 아닐 때다.
다 여문 것은 방향을 바꾸지 못한다. 덜 찬 것에는 아직 여지가 있다. 내 사주의 계절은 어디쯤일까 → 첫 분석 보기 다음 편 · 망종 — 거두면서 심는 때 → 이어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