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넘치면 뿌리가 뜬다, 수다목부(水多木浮)
물이 나무를 키운다지만 물이 넘치면 나무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오른다. 받는 힘이 넘쳐 도리어 설 자리를 잃는 구조를, 결핍이 아니라 과잉의 문제로 읽는다.
물은 나무를 키운다. 뿌리가 물을 빨아올려 잎을 틔우고 줄기를 세우니, 자라는 데 물만 한 것이 없다. 화분이 마를세라 자꾸 물을 대는 마음도 다 여기서 나온다. 그런데 명리에서 많다는 말은 절대량이 아니라 늘 상대에 견준 말이다. 아름드리 고목이라면 소나기도 반갑겠지만, 갓 뿌리내린 여린 나무 한 그루에 강물을 들이부으면 그 물은 키움이 아니라 잠김이 된다.
받쳐 주는 기운이 감당할 몫을 넘어 넘치면, 나무는 자라는 것이 아니라 떠오른다. 뿌리를 붙들어야 할 흙을 물이 밀어내고, 딛고 설 무게마저 물이 앗아 간다. 뿌리 끝이 허공에 뜬 채 물살에 이리저리 쓸리니, 자양이 곧 표류가 된 자리다. 물 위에 뜬 나무는 곁에 강이 아무리 넓어도 제 뿌리로 그 물을 길어 올리지 못한다. 이를 수다목부(水多木浮), 물이 많아 나무가 뜬다고 한다. 원전은 뜰 표 자를 써 수다목표(水多木漂)라 적었는데, 국내에서는 뜰 부 자로 통용된다. 글자는 달라도 뿌리 없이 물 위를 떠도는 형국을 가리키기는 매한가지다.
이 자리의 어려움은 넘치는 것이 다름 아닌 사랑이라는 데 있다. 미워서 그르친 것이 아니라 아껴서 그르친 것이라, 탓할 대상이 없다. 나무는 물이 야속한 줄도 모른 채 떠 있고, 물은 제가 나무를 띄운 줄도 모른 채 붓는다. 그래서 이 자리는 잘못을 짚어 낼 데가 없어 더 오래 이어진다. 받는 힘이 지나치게 두터운 사주를 결핍의 눈이 아니라 과잉의 눈으로 따로 살피는 까닭이 여기 있다.
그러면 넘치는 물을 어찌 다스리는가. 두 길이 있다. 하나는 흙(土)으로 둑을 세워 물을 가두는 것이다. 흐트러지던 물길에 제방이 서면 나무가 비로소 딛고 설 자리가 생긴다. 다른 하나는 볕(火)을 들여 젖은 기운을 걷어 내는 것이다. 넘치던 물기가 마르면 뿌리가 흙을 문다. 어느 쪽이든 물을 더 붓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뿌리는 물이 흔한 자리가 아니라 마른 자리에서 내린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받쳐 주는 손이 넘쳐 도리어 서지 못하는 자리는 사람 사이에도 있다. 다칠까 앞질러 치워 주고, 헤맬까 길을 대신 놓아 주는 보살핌이 두터이 쌓이면, 받는 이는 딛고 설 무게를 잃는다. 넘어져 봐야 딛는 법을 익히고, 목말라 봐야 스스로 물을 찾는다. 도움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넘쳐서 무른 것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더 큰 보살핌이 아니라, 스스로 흙을 물 자리를 비워 두는 일이다. 품는 손도 때로 물러설 줄 알아야, 안겨 있던 것이 제 발로 땅을 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