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이 너무 많으면 불이 눌린다, 목다화식(木多火熄)
나무가 불을 일으킨다지만 장작을 한꺼번에 쌓으면 불길은 커지기는커녕 눌려 사그라든다. 재료가 많아서 오히려 타오르지 못하는 구조를 읽는다.
나무는 불을 일으킨다. 마른 장작이 있어야 불씨가 옮아붙어 불꽃으로 자라니, 타오르려면 먼저 나무가 있어야 한다. 모닥불을 피워 본 사람은 안다. 불씨가 자리를 잡기까지는 잔가지 몇을 조심스레 얹어 주어야 한다. 그러니 땔감은 많을수록 좋을 듯싶다. 그러나 많다는 말은 늘 견준 말이라, 이제 막 붙은 작은 불씨 위에 굵은 장작을 산더미로 얹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재료가 넉넉한 것과 불이 잘 타는 것은 결코 같은 일이 아니다.
탈 것이 지나치게 많으면 불은 커지기는커녕 도리어 눌린다. 한꺼번에 쌓인 장작이 공기가 드나들 틈을 막아, 숨을 못 쉰 여린 불씨는 연기만 피우다 사그라든다. 이를 목다화식(木多火熄), 나무가 많아 불이 꺼진다고 한다. 다만 원전은 성할 치 자를 써 목다화치(木多火熾), 곧 나무가 많으니 불이 더 성해진다고 적었다. 뜻이 정반대인 셈이다. 큰 불이 이미 자리를 잡았다면 장작이 많을수록 기세가 오르는 것이 맞다. 그러나 불씨가 아직 여릴 때는 지나친 땔감이 되레 불을 덮어 버리니, 국내에서 통용되는 꺼질 식 자가 이 반생의 자리에는 더 어울린다.
이 자리의 어려움은 모자람이 아니라 지나친 채비에 있다. 재료를 더 모으고 조건을 더 갖추는 사이, 정작 불붙일 때를 놓친다. 쌓는 일과 나아가는 일은 다른데, 쌓기만 하다 보면 갖춘 것이 도리어 발을 묶는다. 준비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준비만 하염없이 이어진 것이다. 쟁여 둔 땔감이 많을수록 그 앞에서 머뭇거리는 시간도 길어진다. 곳간은 그득한데 아궁이는 여태 차갑다.
그러면 어찌하는가. 넘치는 장작을 덜어 내는 힘이 쇠(金)다. 쇠도끼로 나무를 알맞게 쳐 내어 필요한 만큼만 남기면, 눌려 있던 불이 비로소 숨을 틔워 타오른다. 덜어 냄이 아까울 수 있으나, 덜어 낸 자리에 바람이 들어야 불이 산다. 비우는 것이 여기서는 곧 채우는 일이 된다. 다 태우려 욕심내지 않고 한 아름만 골라 지피는 것, 그것이 이 자리의 처방이다. 다 쓰려 들지 않아야 도리어 쓰인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가진 것이 많아 오히려 시작을 못 하는 자리는 낯설지 않다. 자료를 더 모으고 자격을 더 갖추는 동안 첫발이 자꾸 뒤로 밀린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넘쳐서 눌린 것이다. 이럴 때는 더 채우는 대신 덜어 내야 한다. 다 갖춘 뒤에 하려던 마음을 잠시 접고, 지금 손에 든 한 줌으로 먼저 불을 붙이는 편이 낫다. 붙은 불은 나머지 장작을 스스로 끌어다 태운다. 갖춤은 시작을 돕지만, 갖춤에만 머물면 그 시작을 도리어 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