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사나우면 물이 끓어 날아간다, 화다수증(火多水蒸)
물이 불을 끈다지만 불길이 온 들을 덮으면 물은 끄기도 전에 끓어 김으로 날아간다. 진화하려다 진화하는 쪽이 소진되는 구조를 읽는다.
물은 불을 끈다. 한 동이 물이면 타오르던 불도 잡으니, 불을 다스리는 것은 물의 몫이다. 그래서 물이 불을 이긴다고 여긴다. 그러나 강약은 절대량이 아니라 늘 상대에 견준 말이다. 화롯불이라면 물 한 바가지로 끄겠지만, 온 들을 덮은 불길에 한 바가지 물을 끼얹으면, 그 물은 불을 끄기도 전에 끓어 김으로 날아간다. 물이 불을 이긴다는 말에도 '알맞을 때'라는 단서가 숨어 있는 것이다.
끄는 힘은 절대적이지 않다. 다스리려는 쪽이 약하고 타오르는 쪽이 압도적이면, 끄려는 물이 먼저 사라진다. 이를 화다수증(火多水蒸), 불이 많아 물이 증발한다고 한다. 원전은 불꽃 염과 데울 작 자를 써 화염수작(火炎水灼)이라 적었다. 국내 통용은 찔 증 자로 옮겼는데, 물이 그저 말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김이 되어 끓어 날아간다는 결로 읽는 편이 이 자리에 더 맞다. 다스리려다 다스리는 쪽이 사라지는 이 자리 또한 반극(反剋)이다. 강약이 뒤바뀌어 반대쪽이 꺼지는 짝은, 이 시리즈 뒤편에서 따로 만난다.
그러니 여기서 물은 모자란 것이 아니다. 혼자였던 것이다. 한 바가지로는 안 될 일도 여러 동이가 모이면 능히 끈다. 물은 모여야 물이 되고, 흩어진 물방울은 불 앞에서 이내 마른다. 힘이 적어서가 아니라 힘이 흩어져 있어서 진 것이다. 한 방울씩 흩어진 물은 닿기도 전에 마르고, 한데 모인 물은 큰 불도 잡는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다급함은 곧 흩어짐이다.
이 구조는 대개 혼자 진화에 뛰어든다. 감당 못 할 불을 제 한 몸으로 끄려다, 불을 잡기는커녕 제가 먼저 타 말라 버린다. 급할수록 홀로 달려들기 쉬운데, 그럴수록 끄려는 쪽만 소진된다. 급한 마음이 물을 모을 틈을 앗아 가는 것이다.
그래서 명리는 불로 곧장 뛰어들라 하지 않는다. 먼저 물을 모으라 한다. 그 근원을 대주는 것이 쇠(金)다. 쇠가 물을 낳으니, 마른 샘에 새 물길을 대어 물을 넉넉히 불려 두면, 같은 불도 넉넉한 물 앞에서는 잦아든다. 붓기 전에 먼저 채우는 순서가 있다는 것, 이것이 이 자리의 처방이다. 곧장 맞불처럼 뛰어들기보다, 맞설 물을 먼저 채워 두는 일이다. 채운 뒤에 부으면, 한 바가지가 아깝던 불도 끝내 잡힌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감당 못 할 일을 혼자 끄러 뛰어들다 제가 먼저 소진되는 자리는 사람 사이에도 있다. 급한 불을 홀로 다 잡으려다 정작 자신이 말라 버린다.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혼자 달려들어서다. 불이 커서만이 아니라, 혼자 감당하려는 마음이 물을 먼저 말린다. 혼자 다 끄겠다는 마음이 정작 물을 먼저 태운다. 그럴 때는 곧장 뛰어들기보다 먼저 힘을 모으고 곁을 불려야 한다. 물이 모이면 같은 불도 그때는 잦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