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 가지는 다듬기 전에 잘린다, 금다목절(金多木折)
쇠가 나무를 다듬는다지만 나무가 여릴 때 그것은 전지가 아니라 절단이 된다. 다듬음과 꺾임 사이의 경계를 읽는다.
쇠는 나무를 다듬는다. 낫과 가위가 웃자란 가지를 쳐 내어 나무의 매무새를 잡으니, 나무를 손보는 것은 쇠의 몫이다. 그래서 나무에는 알맞은 손질이 이롭다 이른다. 그러나 명리에서 강약은 절대량이 아니라 늘 상대에 견준 말이다. 굵은 둥치라면 쇠가 알맞은 손질이 되지만, 이제 돋은 여린 가지에 큰 낫을 대면, 그것은 다듬음이 아니라 그대로 잘림이 된다.
다듬음은 다듬길 견딜 굵기가 있을 때에만 성립한다. 견딜 굵기가 없으면 그것은 손질이 아니라 절단이다. 이를 금다목절(金多木折), 쇠가 많아 나무가 꺾인다고 한다. 원전은 여덟 글자로 목약봉금, 필위작절(木弱逢金, 必爲斫折)이라 적었다. 나무가 약할 때 쇠를 만나면 반드시 베여 꺾임을 당한다는 뜻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그 여덟 자를 네 글자로 줄였을 뿐, 본디 말은 긴 구문에 있다.
이 자리는 열한째 편 목다금결(木多金缺)의 뒤집힌 짝이다. 그때는 나무가 아름드리라 도리어 도끼날이 상했다. 여기서는 반대로 나무가 여려 쇠에 꺾인다. 같은 쇠와 나무인데, 어느 쪽이 강한가에 따라 상하는 쪽이 정반대로 갈린다.
그러니 여기서 다듬는 손은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받을 가지가 아직 여린 것이다. 좋은 조언도 굵어진 뒤에는 매무새가 되지만, 이제 돋은 가지에는 같은 말이 상처가 된다. 밖에서 오는 손질이 제 굵기를 넘어서면, 이로운 말도 시기가 이르러 도리어 꺾는 힘이 된다.
그래서 명리는 쇠를 거두라 하지 않는다. 쇠가 여린 가지를 곧장 내리치면 가지가 잘리니, 쇠와 나무 사이에 물(水)을 둔다. 쇠가 물을 낳고, 그 물이 나무를 기른다. 자르던 쇠의 힘이 물을 거쳐 나무로 흘러, 베던 힘이 도리어 나무를 키우는 힘으로 돌아선다. 이렇게 극을 생으로 돌려세우는 다리가 통관(通關)이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때 이른 손질에 여린 뜻이 그대로 꺾이는 자리는 사람 사이에도 있다. 여문 사람에게는 쓴소리가 매무새가 되지만, 이제 막 돋은 사람에게는 같은 말이 상처가 된다. 조언이 그른 것이 아니라 시기가 이른 것이다. 그럴 때는 그 손을 곧장 받기보다, 한 번 적셔 줄 자리를 사이에 두어야 한다. 다리가 놓이면 자르던 쇠도 나무를 키우는 쇠가 된다.
여기서 스무 편이 닫힌다. 뒤의 열 편을 돌아보면, 한 계열은 극하려던 쪽이 도리어 약해 제가 상했고, 다른 한 계열은 극을 당하는 쪽이 약해 일방으로 무너졌다. 쇠와 나무, 나무와 흙, 흙과 물, 물과 불, 불과 쇠 — 같은 두 기운을 두고, 누가 강한가에 따라 상하는 쪽이 번번이 뒤집혔다. 앞선 반생과 설기의 열 편까지 아우르면 말은 하나로 모인다. 생이라 하여 늘 살리는 것도, 극이라 하여 늘 다스리는 것도 아니다. 무엇을 만나느냐가 아니라 그 둘의 강약이, 살림과 상함을 가른다. 명리가 글자의 종류보다 늘 그 무게를 먼저 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무엇을 만나느냐보다, 그 둘의 강약이 작용의 빛깔을 정한다. 생과 극의 이치를 처음부터 → 「생극제화 · 기본」 개념편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