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 땅은 뿌리에 파여 무너진다, 목다토함(木多土陷)
나무가 흙을 붙잡는다지만 땅이 얇으면 뿌리는 붙잡는 게 아니라 파헤쳐 무너뜨린다. 지탱이 침식으로 바뀌는 경계를 읽는다.
나무는 흙을 붙잡는다. 뿌리가 흙을 움켜쥐어 비바람에도 흩어지지 않게 하니, 무른 땅을 여미는 것은 나무의 몫이다. 그래서 흙에는 뿌리가 들어야 든든하다 이른다. 무너져 내리던 비탈도 나무가 서면 비로소 여미어지니, 넓은 땅일수록 뿌리가 이롭다. 그러나 강약은 절대량이 아니라 늘 상대에 견준 말이다. 두툼한 땅이라면 뿌리가 알맞은 버팀이 되지만, 한 줌 얇은 흙에 억센 뿌리가 사방으로 뻗으면, 그것은 붙잡음이 아니라 파헤침이 된다.
뻗는 힘은 딛는 자리가 두꺼울 때에만 자람이 된다. 딛는 자리가 얇으면 그 힘은 성장이 아니라 잠식이다. 이를 목다토함(木多土陷), 나무가 많아 흙이 꺼진다고 한다. 원전은 여덟 글자로 토쇠봉목, 필조경함(土衰逢木, 必遭傾陷)이라 적었다. 흙이 쇠할 때 나무를 만나면 반드시 파여 무너짐을 겪는다는 뜻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그 여덟 자를 네 글자로 줄였을 뿐, 본디 말은 긴 구문에 있다.
이 자리는 열둘째 편 토다목절(土多木折)의 뒤집힌 짝이다. 그때는 흙이 두터워 도리어 뿌리가 꺾였다. 여기서는 반대로 땅이 얇아 뿌리에 파헤쳐진다. 같은 나무와 흙인데, 어느 쪽이 강한가에 따라 꺾이는 쪽과 무너지는 쪽이 갈린다. 그러니 뿌리의 억셈보다 땅이 그 힘을 받칠 만한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그러니 여기서 뿌리의 뻗음은 죄가 없다. 다만 그것을 받칠 땅이 아직 얇은 것이다. 새 뜻과 새 계획은 두터운 바탕에서는 자람이 되지만, 얇은 바탕에서는 있던 자리마저 파낸다. 밖으로 뻗는 힘이 제 딛는 자리를 넘어서면, 세우기는커녕 딛고 선 땅을 스스로 허문다. 얇은 땅에 정작 필요한 것은 더 뻗는 힘이 아니라 두터워질 시간이다. 뻗기 전에 딛는 자리를 먼저 살펴야 하는데, 순서가 거꾸로 놓인 것이다.
그래서 명리는 뿌리를 자르라 하지 않는다. 나무가 얇은 땅을 곧장 파고들면 땅이 무너지니, 나무와 흙 사이에 불(火)을 놓는다. 나무가 불을 지피고, 그 불이 흙을 낳는다. 파헤치던 뿌리의 힘이 불로 한 번 태워져 흙으로 돌아가니, 무너뜨리던 힘이 도리어 땅을 북돋운다. 뻗는 힘을 태워 땅으로 되돌리는 이 다리가 통관(通關)이다. 뿌리를 자르지 않고도 땅이 사는 길이 여기 있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새것을 들일수록 있던 바탕이 도리어 파이는 자리는 사람 사이에도 있다. 두터운 기반 위에서는 새 계획이 성장이 되지만, 얇은 기반 위에서는 같은 계획이 있던 자리를 잠식한다. 뜻이 지나쳐서가 아니라 아직 바탕이 얇아서다. 뻗는 힘이 지나침을 탓하기 전에, 딛고 설 땅을 먼저 두텁게 하는 순서가 있다. 그럴 때는 뻗는 힘을 곧장 땅에 들이받기보다, 한 번 태워 되돌릴 자리를 사이에 두어야 한다. 사이가 이어지면 파헤치던 뿌리도 땅을 북돋우는 뿌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