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 물길은 흙에 막혀 고인다, 토다수색(土多水塞)
흙이 물을 가둔다지만 물이 여릴 때 가둠은 저수가 아니라 막힘이 된다. 흐르지 못한 물이 고여 탁해지는 구조를 읽는다.
흙은 물을 가둔다. 둑과 논두렁이 물을 붙잡아 두어 함부로 흐르지 않게 하니, 물을 다스리는 것은 흙의 몫이다. 그래서 물에는 가둘 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이른다. 제멋대로 흐르던 물도 둑을 만나 비로소 쓸모를 얻으니, 큰물일수록 가둘 그릇이 이롭다. 그러나 물의 힘을 헤아리지 않은 둑은 그릇이 아니라 벽이 된다. 그러나 강약은 절대량이 아니라 늘 상대에 견준 말이다. 도도한 강물이라면 흙이 알맞은 그릇이 되지만, 겨우 배어 나오는 여린 물줄기를 두터운 흙으로 막으면, 그것은 가둠이 아니라 그대로 막힘이 된다.
가둠은 흐를 힘이 있을 때에만 저수가 된다. 흐를 힘이 없는데 막기만 하면 그것은 그저 정체다. 이를 토다수색(土多水塞), 흙이 많아 물이 막힌다고 한다. 원전은 여덟 글자로 수약봉토, 필위어색(水弱逢土, 必爲淤塞)이라 적었다. 물이 약할 때 흙을 만나면 반드시 진흙에 막혀 고인다는 뜻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그 여덟 자를 네 글자로 줄였을 뿐, 본디 말은 긴 구문에 있다.
이 자리는 열셋째 편 수다토류(水多土流)의 뒤집힌 짝이다. 그때는 물살이 거세 도리어 둑이 쓸려 갔다. 여기서는 반대로 물이 여려 흙에 갇힌다. 같은 흙과 물인데, 어느 쪽이 강한가에 따라 쓸려 가는 쪽과 갇히는 쪽이 뒤바뀐다. 그러니 흙의 두께보다 물이 흐를 힘을 지녔는지를 먼저 보아야 한다.
그러니 여기서 규율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틀을 받을 흐름이 아직 여린 것이다. 규칙은 도도한 흐름에게는 방향을 잡아 주지만, 겨우 트인 물길에게는 숨을 막는 벽이 된다. 밖에서 오는 틀과 규율이 제 힘보다 무거우면, 흐르지 못한 물이 고여 이내 탁해진다. 여린 물길에 정작 필요한 것은 벽이 아니라 흘러갈 길이다. 가두기 전에 흐를 힘이 섰는지를 먼저 보아야 한다.
그래서 명리는 흙을 헐라 하지 않는다. 흙이 여린 물길을 곧장 막으면 물이 갇히니, 흙과 물 사이에 쇠(金)를 둔다. 흙이 쇠를 품어 내고, 그 쇠가 물을 낳는다. 가두던 흙이 쇠를 거쳐, 막던 힘이 도리어 물길을 내주는 힘으로 바뀐다. 막힘을 트임으로 돌려세우는 이 다리를 통관(通關)이라 한다. 흙을 헐지 않고도 물이 흐르는 길이 여기 있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지켜 주려던 규칙이 도리어 숨을 막는 자리는 사람 사이에도 있다. 굳센 흐름에게 규율은 방향이 되지만, 이제 트인 여린 물길에게는 같은 규율이 벽이 된다. 틀이 가혹해서가 아니라 아직 내 흐름이 여려서다. 틀이 무거운 것을 탓하기 전에, 내 흐름을 먼저 틔우는 순서가 있다. 그럴 때는 틀을 곧장 뒤집어쓰기보다, 물길을 터 줄 자리를 사이에 두어야 한다. 그 다리가 놓이면 막던 흙도 물길을 내주는 흙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