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더운 자리, 대서(大暑)
일 년 중 가장 더운 자리. 미월의 중기이자 삼복이 걸치는 시기다. 그런데 벼가 가장 크게 자라는 것도 이때라는, 견딤과 자람이 같은 자리에 놓인다는 이야기.
한눈에
- 언제 · 양력 7월 22~23일 무렵.
- 대서란 · 큰 더위(大暑). 일 년 중 기온이 가장 높은 자리.
- 중기의 자리 · 미월(未月)의 한복판. 월지는 바뀌지 않는다.
- 삼복 · 초복·중복·말복이 이 무렵에 걸친다. 절기와는 별도의 셈법이다.
- 역설 · 사람에게 가장 힘든 시기가 벼에게는 가장 잘 자라는 시기다.
- 읽는 법 · 정점은 끝이 아니라 방향이 이미 바뀐 자리다.
대서(大暑)는 큰 더위다. 일 년 중 기온이 가장 높은 구간.
하지에 해가 가장 길었지만 더위의 정점은 그로부터 한 달쯤 뒤다. 들어온 열이 쌓이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 쌓임이 최대가 되는 자리가 여기다.
삼복은 절기가 아니다
이 무렵을 흔히 삼복이라 부른다. 초복·중복·말복.
다만 복날은 24절기에 속하지 않는다. 절기가 태양의 위치로 정해지는 것과 달리, 복날은 하지 이후 특정한 날짜를 세어 잡는 별도의 셈법이다. 그래서 해마다 절기와 며칠씩 어긋난다.
두 체계가 같은 시기를 다르게 표시하고 있는 셈인데, 겹쳐 놓고 보면 옛사람이 이 구간을 얼마나 크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절기로도 이름을 붙이고 따로 날을 세어 또 이름을 붙였다.
가장 힘든 때가 가장 잘 자라는 때
대서에는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사람에게 이 시기는 최악이다. 덥고 습하고 밤에도 식지 않는다. 일을 하기 어렵고 몸이 축난다.
그런데 벼에게는 이때가 가장 좋은 때다. 벼는 고온다습한 조건에서 폭발적으로 자란다. 사람이 견디기 힘든 그 조건이 벼에게는 최적이다. 한여름을 지나야 가을에 거둘 것이 생긴다.
같은 날씨를 두고 한쪽은 견디고 한쪽은 자란다. 논 옆에 서서 땀을 흘리는 사람과, 그 논에서 쑥쑥 크는 벼가 같은 공기 속에 있다.
지금 자라는 중일 수도 있다
이 그림에서 가져올 것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힘든 시기를 지날 때 우리는 그 시기를 손실로 계산한다. 아무것도 못 했고 그냥 버텼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 기간에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견디는 것과 자라는 것이 늘 반대편에 있는 것은 아니다. 조건이 가혹한 시기에만 생기는 것들이 있다. 안 해도 되던 것을 하게 되고, 안 보이던 우선순위가 보이고, 버틸 수 있는 폭 자체가 넓어진다. 그때는 그것이 성장인 줄 모른다. 그냥 힘들기만 하다.
물론 모든 고생이 자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말은 지나치게 쉽고, 견디는 사람에게 무례하기도 하다. 다만 지금 아무것도 안 되고 있다는 판단이 늘 정확한 것은 아니라는 정도는 말할 수 있다. 벼가 자라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정점의 다른 뜻
대서가 정점이라는 말에는 다른 면도 있다.
가장 덥다는 것은 이보다 더 더워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남은 것은 물러나는 일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다음 절기는 입추다. 가장 더운 자리 바로 다음에 가을의 문이 놓여 있다. 절기의 배치가 늘 이런 식이다. 극에 이른 자리 옆에 이미 다음 계절이 대기하고 있다.
지금이 정점인지 아닌지는 대개 지나야 안다고 앞 편에서 말했다. 다만 그 원리를 알고 있으면, 최악이라고 느껴지는 자리에서 하나를 덧붙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정점이라면 방향은 이미 바뀌었다는 것.
견디는 일과 자라는 일이 같은 자리에 놓일 때가 있다.
벼가 자라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내 사주의 흐름은 어디쯤일까 → 첫 분석 보기 다음 편 · 입추 — 가장 더울 때 서는 가을 → 이어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