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가 내리는 자리, 상강(霜降)
서리가 내리는 자리. 술월의 중기이자 가을의 마지막 절기다. 서리가 자라는 일을 끝내는 힘이면서 동시에 맛을 만드는 힘이라는, 끝맺음에 관한 이야기.
한눈에
- 언제 · 양력 10월 23~24일 무렵.
- 상강이란 · 서리 상(霜), 내릴 강(降).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자리.
- 중기의 자리 · 술월(戌月)의 한복판. 가을의 마지막 절기다.
- 서리란 · 이슬이 얼어붙은 것.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야 생긴다.
- 성장의 종료 · 서리를 맞으면 대부분의 작물이 자라기를 완전히 멈춘다.
- 읽는 법 · 어떤 것은 끝나야 완성된다.
상강(霜降)은 서리가 내린다는 뜻이다.
백로에 이슬이 맺혔고, 한로에 그 이슬이 차가워졌고, 상강에 이르러 얼어붙는다. 세 절기가 하나의 이야기를 순서대로 이어 간다. 물기가 맺히고, 차가워지고, 굳는다.
서리가 내리면 끝난다
농사에서 첫서리는 분명한 선이다.
서리를 맞으면 대부분의 작물이 죽는다. 잎이 물러지고 줄기가 주저앉는다. 여름 내내 무성하던 밭이 하룻밤 사이에 정리된다. 아직 매달려 있던 것들도 여기서 끝난다.
그래서 서리 전에 거두는 것이 농사의 기본이었다. 한로부터 상강까지가 그 마감 구간이다.
이 매몰참에는 다른 면도 있다. 서리는 어떤 판단도 하지 않는다. 다 여문 것과 덜 여문 것을 구별하지 않고 똑같이 끝낸다. 준비된 자에게 관대하지도, 안 된 자에게 잔인하지도 않다. 그냥 시기가 되면 내린다.
서리를 맞아야 단맛이 든다
그런데 여기에 뒤집는 사실이 하나 있다.
서리를 맞은 채소가 더 달다. 배추, 무, 시금치 같은 월동 채소는 서리를 맞은 뒤에 맛이 확연히 좋아진다.
이유는 식물의 생존 방식에 있다. 얼면 세포가 망가지기 때문에, 추위를 만난 식물은 당분을 만들어 몸속 농도를 높인다. 농도가 높으면 잘 얼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얼지 않기 위해 단맛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리는 끝내는 힘이면서 동시에 맛을 만드는 힘이다. 하나의 조건이 두 가지 일을 한다.
끝나야 완성되는 것
이 둘을 같이 놓고 보면 상강의 이야기가 나온다.
끝맺음은 빼앗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자라는 일이 끝나야 여무는 일이 완결된다. 계속 자라기만 하면 알맹이가 차지 않는다. 어느 시점에 성장을 멈추고 안으로 돌려야 단단해지고 달아진다. 끝이 없으면 완성도 없다.
사람이 하는 일도 어떤 것은 그렇다. 계속 손대고 계속 키우는 동안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확정되지 않는다. 멈춰야 형태가 생기고, 형태가 생겨야 평가할 수 있고, 평가해야 다음이 있다.
끝내기 싫은 마음은 대개 아쉬움에서 온다. 조금 더 하면 나아질 것 같다. 실제로 조금은 나아질 수도 있다. 그런데 끝내지 않아서 못 하게 되는 것들이 그사이에 쌓인다.
가을이 여기서 닫힌다
상강은 가을의 마지막 절기다. 다음은 입동이다.
한 계절이 닫힐 때마다 이 시리즈는 비슷한 자리에 선다. 곡우에서 봄이 닫혔고 대서에서 여름이 닫혔다. 그때마다 그 계절에 해 둔 만큼이 다음 계절의 조건이 됐다.
가을에 거둔 만큼이 겨울을 나는 밑천이 된다. 겨울은 새로 만드는 계절이 아니라 있는 것으로 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확인해 둘 것이 있다면 무엇을 얼마나 거뒀는가다. 아쉬운 것은 아쉬운 대로 세어 두고, 남은 것은 잘 간수하면 된다.
끝맺음은 빼앗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은 끝나야 완성된다.
서리는 자라기를 끝내면서 동시에 단맛을 만든다. 내 사주의 계절은 어디쯤일까 → 첫 분석 보기 다음 편 · 입동 — 겨울이 서는 자리 → 이어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