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두터우면 금이 묻힌다, 토다금매(土多金埋)
흙이 금을 품는다지만 흙이 지나치게 두터우면 금은 캐내지 못한 채 묻힌다. 품어 주는 힘이 과해 드러날 기회를 잃는 구조를 읽는다.
흙은 금을 품는다. 쇠붙이는 땅속에서 나고 땅의 품에서 여무니, 흙은 금을 낳아 기르는 어미다. 그러니 흙이 두터울수록 품은 것도 든든할 듯싶다. 그러나 많다는 말은 늘 견준 말이라, 얇은 쇳조각 하나 위에 흙이 산처럼 두텁게 덮이면 품음은 어느새 묻힘이 된다. 얕게 덮인 쇠는 손으로 쓸어도 드러나지만, 산 아래 깊이 든 쇠는 곡괭이로도 좀처럼 닿지 못한다. 묻힌 깊이에 따라 같은 쇠도 보물이 되고 없는 것이 된다.
감싸 주는 기운이 지나치게 두꺼우면 안의 것은 지켜지는 동시에 가려진다. 땅이 너무 두터우면 그 속의 금은 캐낼 길이 막혀 끝내 빛을 못 본다. 이를 토다금매(土多金埋), 흙이 많아 금이 묻힌다고 한다. 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있으되 드러날 자리를 잃은 것이다. 지켜 주려던 두께가 그대로 가두는 벽이 된 셈이니, 품는 힘과 가두는 힘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래서 이 자리의 어려움은 지닌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꺼낼 길이 막혀서 생긴다. 묻혀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것은 엄연히 다른데, 겉에서 보면 둘 다 똑같이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실은 이미 지닌 것이 두꺼운 보살핌 아래 잠들어 있을 뿐이다. 그 잠을 없음으로 오해하는 데서 이 자리의 답답함이 온다. 그러니 조바심이 앞서면 있는 것마저 더 깊이 파묻기 쉽다.
묻힌 것을 두고 없다 여기면 엉뚱한 데서 새것을 구하게 된다. 그러나 이 자리에 정작 필요한 일은 밖에서 더 들이는 것이 아니라, 안에 든 것을 위로 드러내는 것이다. 새로 사 오는 것보다 파내는 것이 먼저인 자리다.
파내는 데는 두 길이 있다. 하나는 나무(木)로 두터운 땅을 갈라 길을 내는 것이다. 뿌리가 흙을 헤집고 들면 묻혀 있던 쇠가 비로소 드러난다. 이를 두고 흙을 성글게 한다 하여 소토(疏土)라 한다. 다른 하나는 물(水)로 흙을 씻어 조금씩 흘려보내는 것이다. 물이 겉흙을 실어 나르면 덮인 두께가 얇아지고, 그만큼 안의 것이 제 모습을 낸다. 무엇이든 파내야 비로소 보인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지켜 주려는 힘이 두터워 도리어 안의 것을 가리는 자리도 있다. 감싸 안는 보살핌이 겹겹이 쌓이면, 품긴 이는 제가 무엇을 지녔는지조차 꺼내 보이지 못한다.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드러낼 틈이 막혀서다. 그럴 때는 더 감싸는 대신 길을 내주어야 한다. 두께를 조금 덜어 내고 바깥바람을 들이면, 오래 묻혀 있던 것이 비로소 제 빛을 낸다. 덜어 냄이 버리는 일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이 자리에서는 덜어 냄이 곧 드러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