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두터우면 불이 꺼져 든다, 토다화회(土多火晦)
불이 흙을 낳지만 흙이 지나치게 두터우면 불은 그 아래 묻혀 빛을 잃는다. 결과물에 파묻혀 정작 빛이 흐려지는 구조를 읽는다.
불은 흙을 낳는다. 타고 남은 재가 땅에 쌓여 흙이 되니, 불은 제 몸을 사위어 흙을 이룬다. 화전을 일군 자리가 이듬해 유독 기름진 것도, 불이 재가 되어 땅으로 돌아간 덕이다. 그러나 많다는 말은 늘 견준 말이라, 작은 화로 위에 앉은 얇은 재라면 대수롭지 않지만, 그 위로 흙이 자꾸 쌓여 두터운 더미가 되면 정작 아래의 불이 숨을 잃는다. 재는 불이 남긴 흔적인데, 그 흔적이 두꺼워지면 도리어 불의 숨통을 막는 것이다.
낳은 것이 지나치게 두터워지면 낳아 준 쪽은 그 아래 묻혀 빛을 잃는다. 이를 토다화회(土多火晦), 흙이 많아 불이 어두워진다고 한다. 앞의 셋째 편 화다토초(火多土焦)와는 정확히 반대다. 그때는 불이 너무 세어 흙이 갈라졌으니 어미가 많아 자식이 메마른 것이라면, 여기서는 흙이 너무 두터워 불이 꺼져 드니 자식이 많아 어미가 스러지는 것이다. 같은 불과 흙인데, 많은 쪽에 따라 스러지는 쪽이 뒤바뀐다. 내가 이룬 것이 도리어 나를 덮는 이런 자리를 설기태과(洩氣太過)라 이른다.
여기서 흙은 불이 이루어 낸 것이다. 그러니 이 자리는 실패해서가 아니라 도리어 이룸이 쌓여 흐려진다. 해낸 일이 늘어날수록 그것을 이룬 사람은 그 아래 가려진다. 쌓인 것이 많아질수록 정작 그것을 낳은 불빛이 안 보이는 것이다. 쌓인 재가 불을 기린다기보다 도리어 불을 가리는 셈이다.
성과가 사람을 덮는 자리다. 만든 것에 이름이 붙고 만든 이는 잊히니, 쌓을수록 정작 자신은 옅어진다. 밖에서 보기엔 이룬 것이 그득한데 안에서는 정작 무엇을 위해 이렇게 쌓아 왔는지 흐릿해진다. 지난 이룸이 다음 이룸의 불씨를 눌러 앉히는 자리다. 문제는 이룸 그 자체가 아니라, 이룬 것에 파묻혀 다음을 밝힐 불씨마저 덮이는 데 있다.
명리의 처방은 나무(木)다. 나무가 두터운 흙을 뚫고 뿌리를 내려 숨길을 내면, 짓눌려 있던 불이 바람을 얻어 되살아난다. 흙을 성글게 하는 이 일을 소토라 하는데, 덜어 내야 아래의 불이 다시 밝아진다. 쌓은 것을 다 허물라는 말이 아니라, 그 사이에 바람길 하나를 내라는 뜻이다. 숨길 하나가 트이면 꺼져 가던 불도 놀랍도록 되살아난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해낸 일은 쌓이는데 정작 자기는 점점 안 보이는 자리가 있다. 이룬 것이 이름을 얻을수록 그것을 만든 사람은 그 뒤로 물러난다. 못나서가 아니라 그저 쌓아 온 것에 파묻힌 것이다. 실패가 사람을 지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성공이 더 조용히 사람을 지운다. 그럴 때는 더 쌓기보다 한 번 헐어 숨길을 내야 한다. 쌓은 것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그 틈으로 숨 쉴 자리 하나를 남기라는 말이다. 덜어 낸 그 자리로 제 빛이 다시 새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