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목 앞에서 도끼날이 상한다, 목다금결(木多金缺)
쇠가 나무를 다듬는다지만 나무가 아름드리면 베이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도끼날이다. 다스리려다 다스리는 쪽이 상하는 구조를 읽는다.
쇠는 나무를 다듬는다. 도끼와 낫이 가지를 치고 재목을 깎으니, 나무를 매만지는 것은 쇠의 몫이다. 그래서 무엇이든 쇠가 나무를 이긴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명리에서 강약은 절대량이 아니라 늘 상대에 견준 말이다. 잔가지라면 작은 칼로도 쳐 내겠지만, 아름드리 거목 앞에 무딘 도끼 하나를 들이대면, 베이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도끼날이다. 쇠가 나무를 이긴다는 말에도 '알맞을 때'라는 단서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극은 늘 강약을 따진다. 누르는 쪽이 약하고 눌리는 쪽이 강하면, 누름은 다스림이 아니라 제 몸을 상하는 일이 된다. 이를 목다금결(木多金缺), 나무가 많아 쇠가 이지러진다고 한다. 다만 원전은 단단할 견 자를 써 목견금결(木堅金缺)이라 적었다. 나무가 몇 그루인가 하는 수가 아니라 나무가 얼마나 단단한가 하는 질을 가리킨 말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표기를 통일하려 많을 다 자로 옮겼을 뿐, 본디 뜻은 굳기에 있다. 이렇게 다스리려다 다스리는 쪽이 도리어 상하는 자리를 반극(反剋)이라 한다. 강약이 뒤바뀌어 반대쪽이 무너지는 짝은, 이 시리즈 뒤편에서 따로 만난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상대는 죄가 없다. 나무가 사나운 것이 아니라 도끼와 나무의 크기가 안 맞은 것이다. 같은 도끼도 여린 나무는 능히 베고, 같은 나무도 큰 도끼 앞에서는 얌전히 다듬어진다. 문제는 힘의 있고 없음이 아니라 두 힘 사이의 저울이다. 저울이 지나치게 기울면 이기고 지는 다툼이 아니라, 다스리려던 쪽이 도리어 상하는 일이 된다.
이 구조는 대개 감당 못 할 것에 무리하게 손을 댄다. 벅찬 상대를 이겨 보려 힘껏 밀어붙이다, 정작 제 날이 먼저 상한다. 지고도 남는 것이 없고 이겨도 몸이 상하니, 부러지는 쪽은 늘 자신이다. 재물이든 일이든, 다스릴 것이 제 그릇보다 크면 다스림이 떠밀림이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는 이기려 들기 전에 커지는 것이 먼저다.
그래서 명리는 상대를 더 밀어붙이라 하지 않는다. 먼저 제 날을 세우라 한다. 그 힘을 대주는 것이 흙(土)이다. 흙이 쇠를 낳으니, 무딘 도끼에 새 쇠를 벼려 넣으면 같은 나무도 베어 낼 만해진다. 상대를 깎기 전에 나를 두텁게 하는 것, 반극의 처방은 늘 이 순서에 있다. 먼저 할 일은 밀어붙이기가 아니라 준비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감당 못 할 일을 힘으로 밀어붙이다 제가 먼저 부러지는 자리는 사람 사이에도 있다. 벅찬 상대, 벅찬 과제 앞에서 물러서지 못하고 맞붙다 정작 자신이 상한다. 상대가 강해서가 아니라 아직 내 날이 여물지 않아서다. 이겨도 남는 것이 없고 지면 더 깊이 팬다. 그럴 때는 더 세게 부딪치기보다 제 힘부터 벼려야 한다. 날이 서면 같은 나무도 그때는 다듬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