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두꺼우면 뿌리가 꺾인다, 토다목절(土多木折)
나무가 흙을 다스린다지만 흙이 무겁고 굳으면 뿌리는 뚫지 못하고 꺾인다. 뚫으려는 힘이 벽의 두께를 못 넘는 구조를 읽는다.
나무는 흙을 다스린다. 뿌리가 땅을 움켜쥐고 흙을 갈라 길을 내니, 굳은 땅을 여는 것은 나무의 몫이다. 그래서 뿌리는 흙을 이긴다고 여긴다. 그러나 강약은 절대량이 아니라 늘 상대에 견준 말이다. 무른 흙이라면 여린 싹도 뚫고 오르겠지만, 바위처럼 굳고 두터운 땅 앞에서 여린 뿌리가 힘껏 파고들면, 뚫리는 것은 흙이 아니라 뿌리다. 나무가 흙을 이긴다는 말에도 '자란 뒤에'라는 단서가 붙는 것이다.
다스릴 대상이 지나치게 무겁고 굳으면 다스리려는 쪽이 먼저 부러진다. 이를 토다목절(土多木折), 흙이 많아 나무가 꺾인다고 한다. 다만 원전은 무거울 중 자를 써 토중목절(土重木折)이라 적었다. 흙이 몇 자리인가 하는 수가 아니라 흙이 얼마나 무거운가 하는 질을 가리킨 말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표기를 통일해 많을 다 자로 옮겼을 뿐, 본디 뜻은 무게에 있다. 다스리려다 다스리는 쪽이 꺾이는 이 자리 또한 반극(反剋)이다. 강약이 뒤바뀌어 반대쪽이 무너지는 짝은, 이 시리즈 뒤편에서 따로 만난다.
그러니 여기서 꺾인 것은 의지가 아니라 시기다. 뿌리가 약해서 진 것이 아니라, 아직 굵어지기 전에 너무 두꺼운 벽을 만난 것이다. 같은 뿌리도 세월을 먹어 굵어지면 끝내 바위를 가른다. 벽이 두꺼운 것이 아니라 내가 아직 얇은 때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다급함은 늘 손해다. 서둘러 받을수록 상하는 것은 벽이 아니라 뿌리다.
이 구조는 대개 때가 이르다. 넘어야 할 벽 앞에서 조급하게 힘을 다 쏟다, 벽은 그대로인데 제 뿌리만 상한다. 벽을 탓할 일도, 제 힘을 탓할 일도 아니다. 다만 뚫을 힘이 여물 시간을 건너뛴 것이 문제다. 때가 되기 전에 힘을 다 쏟으면, 정작 뚫어야 할 때에 쓸 힘이 남지 않는다.
그래서 명리는 벽을 더 세게 받으라 하지 않는다. 먼저 뿌리를 살리라 한다. 그 힘을 대주는 것이 물(水)이다. 물이 나무를 기르니, 마른 뿌리에 물을 대어 굵고 질기게 키우면, 같은 흙도 끝내 갈라진다. 벽을 두드리기 전에 나를 자라게 하는 것, 이것이 이 자리의 순서다. 뚫는 힘은 다그쳐 얻는 것이 아니라 자란 뒤에 쓰는 것이다. 설익은 힘으로 서두르면 벽도 못 넘고 뿌리만 잃는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아직 이른 때에 큰 벽에 부딪혀 제가 먼저 꺾이는 자리는 사람 사이에도 있다. 넘고 싶은 벽 앞에서 조급하게 밀어붙이다 정작 자신이 상한다. 벽이 유난히 높아서가 아니라 아직 내 뿌리가 여려서다. 조급함이 벽을 허물기 전에 제 뿌리를 먼저 갉는 것이다. 그럴 때는 더 세게 부딪치기보다 뿌리를 먼저 키워야 한다. 다그친다고 뿌리가 굵어지는 것은 아니다. 굵어진 뒤에는 같은 벽도 그때는 갈라진다.